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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카베 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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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사카베 기에는 일본의 전 유도 선수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유도 57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어린 시절 신증후군을 앓았으나 유도를 시작하며 건강을 회복했다. 전국 중학교 유도 대회 3연패를 달성했으며, 세계 주니어 선수권 우승, 후쿠오카 국제 대회 우승 등 굵직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부상으로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2005년 현역에서 은퇴 후, 탤런트, 스포츠 평론가로 활동하며 후쿠오카 대학 여자 유도부 감독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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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카베 기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국적일본
출생일1978년 10월 11일
출생지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신장160cm
체중57kg
종목유도
체급라이트급
소속팀후쿠오카현 경찰대
은퇴2005년 1월 17일
올림픽 성적
올림픽 순위3위
올림픽 연도2000년
올림픽 체급여자 57kg급
세계 선수권 대회 성적
세계 선수권 대회 순위3위
세계 선수권 대회 연도2001년
세계 선수권 대회 체급여자 57kg급
아시아 경기 대회 성적
아시아 경기 대회 종류AS
아시아 경기 대회 순위1위
아시아 경기 대회 연도2000년, 2003년
아시아 경기 대회 은메달2002 부산 , -57kg급
아시아 경기 대회 동메달1998 방콕 , -57kg급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성적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2000 오사카 , -57kg급, 2003 제주 , -57kg급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은메달1997 마닐라 , -61kg급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동메달2004 알마티 , -57kg급
세계 주니어 유도 선수권 대회 성적
세계 주니어 유도 선수권 대회 금메달1996 포르투 , -61kg급
기타 정보
로마자 표기Kusakabe Kie
가나 표기くさかべ きえ

2. 약력

구사카베 기에는 1978년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서 경찰관의 딸로 태어났다.[3] 어린 시절 신증후군을 앓아 유치원도 거의 다니지 못하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형을 따라 히가시후쿠오카 유도 교실을 견학했는데, 그곳에서 3살 위의 여자아이(다니 료코)가 남자들을 압도하는 모습에 감동받아 유도를 시작했다.[4] 유도를 시작한 지 반년 만에 첫 대회에서 우승했으며[4], 이후 신장병도 완치되었다.[5]

도장 사범 이나다 아키라의 혹독한 훈련과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실력이 급성장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남자들과 함께 단체전에 출전, 이노우에 코세이와 무승부를 기록하고[6] 우치시바 마사토에게 승리하기도 했다.[4]

시립 히가시스미요시 중학교 시절, 전국 중학교 대회에서 3연패(1991-1993)를 달성했다.[7] 이는 남녀를 통틀어 유일한 기록이다.

후쿠오카 공업대학 부속 조토 고등학교 진학 후, 사춘기 등으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으나,[4] 세계 주니어 선수권(1996) 우승, 후쿠오카 국제 대회(1996) 3위 등 다시 실력을 끌어올렸다.

준신 여자 단기 대학 진학 후,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1997) 3위, 전일본 학생 체중별 선수권(1997) 우승, 아시아 선수권(1997) 준우승 등 시니어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1999년 봄 후쿠오카현 경찰에 입청했다.

1999년 5월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경기 도중 왼쪽 무릎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으나, 수술과 재활 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에서 승리하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 본선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후쿠오카 국제 대회 우승(2000, 2002), 세계선수권 3위(2001) 등의 성적을 거두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전했으나, 부상 여파로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2. 1. 부상과 은퇴

구사카베는 1999년 5월,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경기 도중 왼쪽 무릎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5] 일어설 수 없어 들것에 실려 나올 정도였으며,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전 출전도 불투명했다.[3] 그러나 수술을 통해 인대를 실로 당겨 단추로 고정하는 임시 조치를 받고[5] 재활을 거쳐 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했다.

2003년, 구사카베는 다시 왼쪽 무릎 인대를 다쳤다.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 전에 임시 조치를 받았지만, "일본 정상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올림픽 후에도 본격적인 수술을 받지 않고 경기에 계속 출전했던 것이 원인이었다.[9][4][5] 아테네 올림픽 이후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오랜 기간 무리한 탓에 손상 정도가 심각했다. 결국 2005년 1월 17일, 구사카베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4]

3. 은퇴 후 활동

2005년 10월, 구사카베 기에는 12살 연상의 회사원과 결혼했고, 2007년 1월 7일에 딸을 출산했다.[4] 이후 고향인 후쿠오카에서 탤런트 및 스포츠 평론가로 활동하며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2013년 4월, 후쿠오카 대학 여자 유도부 감독으로 취임했다.[11]

4. 기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전후하여 인터넷상에서 '키에땅'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2ch에서는 마이니치 신문과 니케이 신문의 '시드니 올림픽에서 감동한 메달' 인터넷 투표에서 구사카베를 1위로 만들려는 2ch러들의 투표 호소가 있었다. 그 결과, 마이니치에서는 38,800표를 획득하여 2위, 니케이에서는 333,579표를 획득하여 1위를 기록했다.[4]

FBS 후쿠오카 방송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유메 쿠칸 스포츠", "멘타이 와이드"에 준 레귤러로 출연했다. 후쿠오카의 여성 팔씨름 선수를 취재한 프로그램 기획으로 2005년 전일본 팔씨름 대회에 출전하여 60kg급에서 레프트 핸드, 라이트 핸드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

후쿠오카시가 하계 올림픽 유치 운동을 벌였을 때 유치 추진 입장에서 다양한 행사에 참석했다. "유메 쿠칸 스포츠"에서는 오이타현에 있는 오토폴리스 서킷에서 열리는 "엄마 자전거 레이스"에 "팀 유메스포"의 일원으로 참가했지만, 2006년에는 임신으로 참가를 사퇴했다. 당시 구사카베는 '''"올해는 '자전거'가 아닌 '엄마' 쪽으로 참전합니다."'''라고 말했다.

현 경찰 근무 시절, 후쿠오카현의 "가정 폭력 방지 캠페인" 광고에 등장했다.[4]

5. 주요 대회 성적

대회결과
세계 주니어 선수권우승 (1996년)
헝가리 국제우승 (1998년)
프랑스 국제2회 우승 (2001년, 2002년)
1998년 아시안 게임3위
2002년 아시안 게임준우승
JAWA 일본 팔씨름 연맹 주최 대회 60kg급레프트 핸드, 라이트 핸드 모두 준우승 (2005년)[4]


5. 1. 올림픽

1999년 5월,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경기 도중 왼쪽 무릎의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5] 일어설 수 없어 들것으로 매트를 내려왔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전 출전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3] 그러나 수술을 통해 인대를 실로 당겨 단추로 고정하는 처치를 받았고,[5] 재활을 거쳐 올림픽 선발전에 출전했다. 1차 선발전인 반년 뒤의 전국 여자 체중별 선수권과 2차 선발전인 다음 해 2000년 4월의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에서 모두 승리하여 대표 후보로 결정되었다. 여자 57kg급은 일본이 유일하게 대표권을 놓친 체급이었지만, 구사카베는 같은 해 5월 아시아 선수권에서 우승하여 출전권을 획득했고, 9월에 올림픽 출전이 결정되었다.[4]

시드니 올림픽 본선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한 이자벨 페르난데스에게 3회전에서 패했지만, 패자 부활전에서 모두 한판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후에는 은퇴를 생각했지만, "고향에서 열리는 후쿠오카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싶다"며 현역을 속행했다.[3]

2003년, 다시 왼쪽 무릎 인대를 다쳐 장기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사카베는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 전에 임시 처치를 받았지만, "일본의 정상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 올림픽 후에도 본격적인 수술을 하지 않고 경기에 출전했던 것이 화근이었다.[9][4][5] 다음 해 2004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선발전에서도 3위에 그쳤지만, 실적을 고려하여 대표 후보로 선발되었고, 다시 아시아 선수권에서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10][4] 그러나 그 후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서는 일본 여자 유도 선수 중 유일하게 메달을 획득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5. 2. 세계선수권

2001년 뮌헨 세계 선수권에서 3위를 기록했다.[3]

5. 3. 후쿠오카 국제 여자 유도 선수권 대회

대회 연도성적
1996년3위[8]
2000년우승[3]
2002년우승[3]


5. 4. 아시아 선수권

대회결과비고
1997년 아시아 선수권준우승결승에서 정성숙에게 패배[7]
2000년 아시아 선수권우승시드니 올림픽 출전권 획득[4]
2003년 아시아 선수권우승
2004년 아시아 선수권3위아테네 올림픽 출전권 획득[10][4]


5. 5. 아시아 경기 대회

대회결과
1998년3위
2002년준우승


5. 6. 기타 대회


  • 세계 주니어 선수권 (1996년) 우승
  • 헝가리 국제 (1998년) 우승
  • 프랑스 국제 (2001년-2002년) 우승
  • JAWA 일본 팔씨름 연맹 주최 2005년 대회 60kg급 레프트 핸드, 라이트 핸드 모두 준우승[4]
  • FBS 후쿠오카 방송의 기획으로, 후쿠오카시에 거주하는 팔씨름 일본 챔피언 (65kg 초과급 레프트)인 나카타 미사코를 밀착 취재하던 중, 갑작스러운 기획으로 유니폼도 준비하지 못한 채 즉석에서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참조

[1] 서적 New York Times Almanac 2002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4-11-22
[2] 웹사이트 Kie Kusakabe https://www.sports-r[...]
[3] 뉴스 著名な柔道家インタビュー -日下部基栄- http://www.judo-ch.j[...] 東建コーポレーション
[4] 뉴스 転機-あの試合、あの言葉 第45回-日下部基栄-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2006-03-20
[5] 웹사이트 シリーズ 私の健康法 http://www.city.fuku[...] 福岡市医師会 2005-10
[6] 문서 井上는 경기 후에 아버지에게 정좌하라는 말을 듣고 "바카몬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어른이 된 후에도 이노우에에게서 "네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는 농담을 들었다.
[7] 문서 1991년은 52 kg급, 1992년과 1993년은 56 kg급으로 출전.
[8] 문서 [[다니 료코]]와는 고등학교에서도 선배와 후배 사이였다. 또한 유도부는 아니지만 고등학교 동급생에 코미디언 [[나카야마 킨니 군]]이 있었다.
[9] 문서 결국 제대로 인대를 연결한 것은 아테네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였다.
[10] 문서 구사카베 자신은 긴 유도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박빙의 올림픽 출전권을 2회 연속으로 획득한 것이라고 한다.
[11] 뉴스 柔道日下部氏が福岡大監督「五輪選手を」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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